우리글 읽기/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6 - 산길을 벗어나니......

구름은 자유롭다 2024. 1. 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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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설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자나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근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씻어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 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망나니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한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고 하니 집 꼴이 무어겠소. 열여덟살 때 집을 뛰쳐나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 틔다 : '트이다'의 준말. 앞이 확 틔다

* 설게 :  앞뒤를 재어 보지 않고 섣불리

* 제격 : 그 지닌 바의 정도나 신분에 알맞은 격식

* 둔덕 : 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게 언덕이 진 곳

* 대근하다 : 견디기가 어지간히 힘들고 만만하지 않다

* 널다리 : 널빤지를 깔아서 놓은 다리

* 고주 : 술에 몹시 취하여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혹은 그런 사람

* 채이다 : 차이다

* 낫세 : '나잇살'의 비표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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