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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1 -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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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뭇군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군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주단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바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군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가지구 나꾸었나부지. 착실한 녀석인줄 알았더니."

    “그길만은 알 수 있나……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 애시당초 : 애당초. 일의 맨 처음

* 휘장 : 천을 여러 폭으로 이어서 빙 둘러치는 장막

* 거지반 : 거의 절반. 거의

* 궁싯거리다 :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저리 머뭇거리다.

* 춥춥스럽다 : 태도나 행동이 깨끗하고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데가 있다. 

* 각다귀 : 모양은 모기와 비슷하나 크기가 더 큰 곤충(각다귀과)

* 얽둑배기 : 얼굴에 굵고 깊게 얽은 자국이 있는 사람을 낮추러 부르는 말 

* 드팀전 : 아직 끊지 않은 천(무명, 베, 비단 등)을 팔던 가게

* 생원 : 조선 시대 소과(小科)인 생원과에 합격한 사람. 예전에 나이 많은 선비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 

* 동업 : 동업(同業) 같은 (직)업

* 절렁절렁 : 큰 방울이나 얇은 쇠붙이 따위가 자꾸 흔들리거나 부딪쳐 울리는 소리

* 필(疋) : 일정한 길이로 말아 놓은 천을 세는 단위

* 주단 : 명주와 비단

* 바리 : 말과 소의 등에 잔뜩 실은 짐을 세은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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