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같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밴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앙토라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어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 거슴츠레하다 : 졸리거나 술에 취해서 눈이 흐리멍덩하며 거의 잠길 듯 하다.
* 부락스럽다 : 거친 데가 있다. 험상궂은 데가 있다
* 가스러지다 : 잔털 따위가 좀 거칠게 일어나다. 성질이 온순하지 못하고 좀 거칠어지다
* 개진개진 : 눈에 물기가 끈끈하게 서리어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 몽당비 : 끝이 거의 다 닳아서 없어진 비
* 빼짓이 : 액체 따위가 조금씩 스며 나오는 모양
* 굴레 : 말이나 소 따위를 부리기 위하여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
* 비슬비슬 : 자꾸 힘없이 비틀거리는 모양
* 앙토라진 : 마음속에 맺힌 것이 풀리지 아니하여 토라져 있다. (앙하다)
'우리글 읽기 >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6 - 산길을 벗어나니...... (75) | 2024.01.11 |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5 - 이지러는 졌으나... ... (79) | 2024.01.07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4 - 드팀전 장돌림을...... (54) | 2024.01.04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2 - 허생원은 계집과는...... (59) | 2023.12.28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1 -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24) | 2023.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