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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7 -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4.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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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버렸다. 허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 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요, 생원."

  조선달이 바라보며 기어코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뜨릴 젠 딴은 대단한 니귀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나귀에겐 더운 물울 끓여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조광 1936]


* 까물까물 : '가물가물'의 센 느낌. 보일 듯 말 듯 자꾸 희미하게 움직이는 모양

* 경망하다 : 행동이나 말이 가볍고 조심성이 없다.

* 빗디디다 : 잘못하여 디딜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를 디디다.

* 퍽으나 : 퍽

* 해깝다 : '가볍다'의 방언

* 피마 : 다 자란 암말

* 달랑달랑 : 작은 방울이나 메달린 물체 따위가 자꾸 흔들릴 때 나는 소리 혹은 모양

* 아둑시니 : 똑똑하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 청청하다 : 싱싱하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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