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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3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2 - 허생원은 계집과는......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얽둑배기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상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군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얼결김에 .. 2023. 12. 28.
김유정 '봄봄'6 - 그 전날 왜...... 그 전날 왜 내가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몸살을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 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 반도 갈지 않아서 온몸의 맥이 풀리고 대고 짜증만 만다. 공연히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안야! 안야! 이 망할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대리를 꺽어 줄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안냐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 2023. 11. 1.
김유정 '봄봄'5 - 논둑에서......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장인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넌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 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줘야 안 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 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 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 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구장님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 자식아 왜 이래 어른을" 안 간다고 뻗디디고 이렇게 호령은 제 맘대로 하지만 장인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긴다. 막 부려먹고 딸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냐...... 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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