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성으로 엉, 엉,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뭉태는 땅을 얻어 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장인님이 저 달라고 할 적에 제 집에서 위한다는 그 감투(예전에 원님이 쓰던 것이라나, 옆구리에 뽕뽕 좀먹은 걸레)를 선뜻 주었더라면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뭉태란 놈의 말을 전수이 곧이듣지 않았다. 꼭 곧이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장인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딸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장인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점순이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된장찌개하고 간장 한 종지, 조밥 한 그릇,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산나물이 한 대접, 이렇다. 나물은 점순이가 틈틈이 해오니까 두 대접이고 네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밥은 장인님이 한 사발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 된다. 그런데 점순이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놓으며 제 말로 지껄이는 소리가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 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
하니까.
“쇰을 잡아 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들어 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어미 잃은 황새새끼처럼 가엾다, 했을 것이다.
○ 건성 : 진지한 자세나 성의 없이 대충 하는 태도
○ 귓등 : 귀바퀴의 바깥쪽 부분
○ 전수이 : 모두 다
○ 실토이지 : (實吐) 거짓 없이 사실대로
○ 쫑알거리다 : 주로 여자나 아이들이 남이 잘 알라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자꾸 하다.
○ 쇰 : 수염 (충북방언)
○ 샐죽하다 : 마음에 차지 않아 약간 고까워하는 태도로 눈이나 입의 한쪽으로 약간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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