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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김유정-봄봄

김유정 '봄봄' 13 - 장인님은 더 약이......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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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 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리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 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 버렸다. 조금 있다가 장인님이 씩, 씩, 하고 한번 해보려고 기어오르는 걸 얼른 또 떠밀어 굴려 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 번을 하며 그럴 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 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하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랑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 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 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 보다, 했다. 그래도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맸다. 그러다, 얼굴을 드니(눈에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쫓았지 터진 머리를 볼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시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말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이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 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사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 넝 : 낭떠러지

* 알 : 아래

* 낼 : 내일

* 바짓가랑이 : 바지에서 다리를 뺀 부분

* 팽그르(르하다) : 몸이나 물건 따위가 좁게 한 바퀴 돌다,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지다.

* 진땀 : 몹시 애쓰거나 힘들 때 흐르는 끈끈한 땀.

* 내솟다 : 땀이나 눈물, 힘줄 따위가 몸 밖으로 솟아 나오다. 느낌이나 기운이 힘차게 생겨 나오다.

* 까무라치다 : 까무러치다. 얼마 동안 정신을 잃고 죽은 사람처럼 되다.

* 쩔맸다 : 쩔쩔매다.

* 사경 : 머슴이 주인에게서 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이나 물건.

* 볼솜 : 불솜, 상처를 소독하기 위하여 불에 그슬린 솜방망이

* 뚜덕여 : 뚜덕이다. 가볍게 두들겨

* 부랴사랴 : 매우 부산하고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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