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 윤직원 영감은 저편이 싸움을 돕는 줄을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 알고서도,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고 넌지시 늦추 잡도리를 하느라, 고씨가 처음 꽥소리를 칠 때도 손자며느리와 딸을 건너다보면서,
"저, 짝 찢을 년은 왜 또 지랄이 나서 저런다냐!"
하고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서울아씨는 친정아버지를 따라 입을 삐죽거리고, 두 손자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박씨만 조심조심 경손을 나무라느라고 마루로 나오고, 경손이가 온 줄 안 태식은 미닫이의 유리로 밖을 내다보다가 도로 오더니,
"아빠 아빠, 저 경존이 잉? 깍쟁이 자직야, 잉? 아주 옘병헐 자직이야!"
하고 떠듬떠듬 말재주를 부리고 했습니다.
"아서라! 어디서 그런……."
"잉? 아빠, 경존이 깍쟁이 자직야. 도족놈의 자직야, 잉? 아빠, 그치?"
"아서어! 그런 욕 허면 못쓴다!"
윤직원 영감은 이 육중한 막내둥이를 나무란다고 하기보다도, 말재주가 늘어 가는 게 신통하대서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건넌방에서 고씨의 큰소리가 들렸을 때도 윤직원 영감은 딸과 작은손자며느리를 번갈아 건너다보면서 혼자말을 하듯이, 저년이 또 오두가 나서 저러느니, 서방한테 소박을 맞고 지랄이 나서 저러느니, 원체 쌍놈 아전의 자식이요, 보고 배운 데가 없어 저러느니 하고, 고씨더러 노상 두고 하는 욕을 강하듯 내씹고 있었습니다. 하다가 필경 전기(戰機)는 익어, 마침내 고씨의 입으로부터 집안이 어떻다는 둥, 뉘 놈의 씨알머리가 어떻다는 둥, 가로로는 온 집안을, 세로로는 신주 밑구멍까지 들먹거리면서 군욕질이 쏟아져 나왔고, 그리하여 윤직원 영감은 기왕 받아 주는 싸움에 이런 고패를 그대로 넘길 며리가 없는 것이라, 드디어 결전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아―니, 야―야?"
미닫이를 타앙 열어 젖히고 다가앉는 윤직원 영감은 그러기 전에 벌써 밥 먹던 숟갈은 밥상 귀퉁이에다가 내동댕이를 쳤고요.
"……너, 잘 허넝 건 무엇이냐? 너, 잘 허넝 건 대체 무엇이여? 어디 입이 꽝지리(꽝우리) 구녁 같거던, 말 좀 히여 부아라? 말 좀 히여 부아?"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가 큽니다. 몸집이 크니까 소리도 클 거야 당연하지요. 이렇게 되고 보면 고씨야 기다리고 있던 판이니 어련하겠습니까.
"나넌 아무껏두 잘못헌 것 띴어라우! 파리 족통만치두 잘못헌 것 띴어라우! 팔자가 기구히여서 이런 징글징글헌 집으루 시집온 죄ꒃ으넌 아무 죄두 띴어라우! 왜, 걸신허먼 날 못 잡어먹어서 응을거리여? 삼십 년 두구 종질히여 준 보갚음으루 그런대여? 머 내가 살이 이렇게 쪘으닝개루, 소징(素症)이 나서 괴기라두 뜯어 먹을라구? 에이! 지긋지긋히라! 에이 숭악히라."
신사(또는 숙녀)적으로 하는 파인 플레이라 그런지 어쩐지 몰라도, 하나가 말을 하는 동안 하나가 나서서 가로막는 법이 없고, 한바탕 끝이 난 뒤라야 하나가 나서곤 합니다.
"옳다! 참 잘 헌다! 참 잘 히여. 워너니 그게 명색 며누리 체것이 시애비더러 허넌 소리구만? 저두 그래, 메누리 자식을 둘썩이나 띨어다 놓고, 손자자식이 쉬옘이 나게 생讶으먼서, 그래, 그게 잘 허넌 짓이여?"
"그러닝개루 징손주까지 본 이가 그래, 손자까지 본 메누리년더러 육장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싸돌아댕기네 허구, 구십을 놀리너만? 그건 잘 허넌 짓이구만? 똥 묻은 개가 저(겨) 묻는 개 나무래지!"
"쌍년이라 헐 수 띴어! 천하 쌍놈, 우리게 판백이 아전 고준평이 딸자식이, 워너니 그렇지 별수 있겄냐!"
"아이구! 그, 드럽구 칙살스런 양반! 그런 알량헌 양반허구넌 안 바꾸어…… 양반, 흥……! 양반이 어디 가서 모다 급살맞어 죽구 띴덩갑만…… 대체 은제 적버텀 그렇게 도도헌 양반인고? 읍내 아전덜한티 잽혀가서 볼기 맞이먼서 소인 살려 줍시사 허던 건 누군고? 그게 양반이여? 그 밑구녁 들칠수룩 구린내만 나너만?"
아무리 아귓심이 세다 해도 본시 남자란 여자의 입심을 못 당하는 법인데, 가뜩이나 이렇게 맹렬한 육탄(아닌 언탄)을 맞고 보니, 윤직원 영감으로는 총퇴각이 아니면, 달리 기습(奇襲)이나 게릴라전술을 쓸 수밖엔 별 도리가 없습니다.
사실 오늘의 이 싸움에 있어선, 자기 딴은 입이 광주리 구멍 같아도 고씨가 그쯤들이 폭로를 시키는 데야 꼼짝못하고 되잡히게만 경우가 되어 먹었습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도리는, 전자에 그의 부인 오씨가 하던 법식으로 냅다 달려들어 며느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엎지르고, 방치 같은 걸로 능장질을 했으면야 효과가 훌륭하겠지요.
그러나 그 시어머니라는 머자와 시아버니라는 버자가 획 하나 덜하고 더하고 한 걸로, 시아버니는 시어머니처럼 며느리를 때려 주지는 못하게 마련이니, 그 법을 그다지 야속스럽게 구별해 논 자 삼대를 빌어먹을 자라고, 윤직원 영감으로는 저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야, 이놈 경손아!"
육집이 큰 보람도 없이 뾰족하니 몰린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마루로 쿵 하고 나서면서 뒤채로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경손은 제 방에서 감감하게 대답을 하나, 윤직원 영감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연해 소리소리 외칩니다. 한참 만에야 경손이가 양복 고의 바람으로 가만가만 나와서 한옆으로 비껴섭니다.
"너 이놈, 시방 당장 가서 네 할애비 불러 오니라. 당장 불러 와!"
"네에."
"요새 시체넌 거, 이혼이란 것 잘덜 헌다더라, 이혼…… 이놈, 오널 저녁으루 담박 제 지집을 이혼을 안 히였다 부아라! 이놈을 내가……."
과부댁 종놈은 왕방울로 행세한다더니,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 고씨와 싸우다가 몰리면 이혼하라고 할 테라고, 아들 창식을 불러 오라는 게 유세통입니다.
그러나 부르러 간 놈한테 미리 소식 다 듣는 윤주사는, 따고 안 오기가 일쑤요, 몇 번 만에 한번 불려 와선, 네에 내일 수속하지요 하고 시원히 대답은 해도, 그 자리만 일어서면 죄다 잊어버려 버립니다. 그래도 좋게시리 윤직원 영감은 그 이튿날이고 이혼수속 재촉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아 이놈, 넹금 가서 불러 오던 않구, 무얼 뻐언허구 섰어?"
윤직원 영감은 주춤거리고 섰는 경손이더러 호통을 합니다. 경손은 그제야 대답을 하고 옷을 입으러 가는 체 뒤꼍으로 들어갑니다. 눈치 보아 가면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든지, 무엇하면 그냥 잠자코 있다가 넌지시 입을 씻고 말든지, 없어서 못 데리고 왔다고 하든지 할 요량만 대고 있으니까 별로 힘들잘 것도 없는 노릇입니다.
"두구 보자!"
윤직원 영감은 마루가 꺼져라고 굴러 디디면서 대뜰로 내려섭니다.
"……두구 부아, 어디…… 내가 그새까지넌 말루만 그龶지만, 인지 두구 부아라. 저허구 나허구 애비자식 천륜을 끊든지, 지집을 이혼을 허든지 좌우양단간 오널 저녁 안으루 요정을 내구래야 말 티닝개루…… 두구 부아!"
윤직원 영감은 으르면서 구르면서 사랑으로 나가고, 고씨는 그 뒤꼭지에다 대고 제―발 좀 그럽시사고, 이혼을 한다면 누가 무서워서 서얼설 기고 어엉엉 울 줄 아느냐고 퀄퀄스럽게 받아넘깁니다. 이래서 시초 없는 싸움은 또한 끝도 없이 휴전이 되고, 각기 장수가 진지(陣地)로부터 퇴각을 하자, 집안은 다시 평화가 회복되었습니다.
모두들 태평합니다.
[6권 관전기] 계속
* 오두가 나다 : 언짢은 일을 당해 심기가 몹시 불편해지다.
* 아전 : 조선 시대에 중앙과 지방의 관아에 속한 하급관리
* 씨알머리 : 남의 혈통을 속되게 이르는 말
* 군욕질 : 쓸데없는 욕질
* 꽝지리 : 광주리
* 족통 : '발'을 속되게 이르는 말
* 소징(素症) : '소증' , 푸성귀만 너무 먹어서 고기가 먹고 싶은 증세
* 구십 : '구습(口習)' 입에 배어 굳은 말버릇
* 아귓심 : 입심, (말빨)
* 능장질 : 사정없이 몰아치는 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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