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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33

채만식 '태평천하' 26- 윤두꺼비는 이윽고...... 윤두꺼비는 이윽고 세상이 평안한 뒤엔 집안의 문벌 없음을 섭섭히 여겨 가문을 빛나게 할 필생의 사업으로 네 가지 방책을 추렸습니다.   맨 처음은 족보에다가 도금(鍍金)을 했습니다. 그럼직한 일가들을 추겨 가지고 보소(譜所)를 내놓고는, 윤두섭의 제 몇 대 윤아무개는 무슨 정승이요, 제 몇 대 윤아무개는 무슨 판서요, 제 몇 대 아무는 효자요, 제 몇 대 아무 부인은 열녀요, 이렇게 그럴싸하니 족보(族譜)를 새로 꾸몄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지요. 그러노라고 한 이천 원 돈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수나로운 만큼, 그러한 족보 도금이야 조상 치레나 되었지, 그리 신통할 건 없었습니다. 아무 데 내놓아도 말대가리 윤용규 자식 윤두꺼비요, 노름꾼 윤용규의 자식 윤두섭인걸요. 자연, 허천 들린 뱃속처럼 .. 2024. 9. 5.
채만식 '태평천하' 25 - 이윽고 노적과 곡간에서...... 이윽고 노적과 곡간에서 하늘을 찌를 듯 불길이 솟아오르고, 동네 사람들이 그제야 여남은 모여들어 부질없이 물을 끼얹고 하는 판에, 발가벗은 윤두꺼비가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화적은 물론 벌써 물러갔고요.  윤두꺼비는 피에 물들어 참혹히 죽어 넘어진 부친의 시체를 안고 땅을 치면서,     "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 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또한 웅장한 절규이었습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윤직원 영감이 젊은 윤두꺼비 적에 겪던 경난의 한 토막이 대개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고난과 풍파 속에서 모아 마침내는 피까지 적신 재물이니, 그런 .. 2024. 8. 28.
채만식 '태평천하' 24 - 윤용규는 아주 각오를 했읍니다. 윤용규는 아주 각오를 했습니다. 행악은 어차피 당해 둔 것, 또 재물도 약간 뺏겨든 둔 것, 그렇다고 저희가 내 땅에다가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전답을 떠가지는 못할 것, 그러니 저희의 청을 들어 삼천 냥을 들여서 박가를 빼놓아 주느니보다는 월등 낫겠다고, 이렇게 이해까지 따진 끝의 각오이던 것입니다.   "진정"   두목은 한번 더 힘을 주어 다집니다.   "오-냐, 날 죽이기밖으 더 헐 테야?"  "저놈 잡아 내랏!"   윤용규의  말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두목이 뒤를 돌려다 보면서 호령을 합니다. 등뒤에 모여 섰던 수하 중에 서넛이 나가 우르르 방으로 몰려 들어 가더니 왁진왁진 윤용규를 잡아 끕니다. 그러자 마침 안채로난 뒷문이 와락 열리더니, 흰 머리채를 풀어 헤뜨린 윤용규의 노처가 아이구머니 .. 2024. 8. 20.
채만식 '태평천하' 23 - 일은 그런데 피자파장이어서...... 일은 그런데 피장파장이어서 화적패도 또한 말대가리 윤용규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동료 박가를 찔러서 잡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박가가 잡혀가서 그 모진 혹형을 당하면서도 구혈이나 두목이나 도당의 성명을 불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런 만큼 의리가 가슴에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윤용규한테 대한 원한은 우선 접어 놓고 어디 일을 좀 무사히 펴이게 하도록 해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첫 꾀였습니다. 만약 그런 꾀가 아니라면야 들어서던 길로 지딱지딱 해버리고 돌아섰을 것이지요.  두목은 윤용규가 전번과는 달라 악이 바싹 올라 가기고 처음부터 발딱거리면서 뻣뻣이 말을 못 듣겠노라고 버티는 데는 물큰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이냐"   그는 눈을 부라.. 2024. 8. 4.
채만식 '태평천하' 22 - 문초는 그러나 각각...... 문초는 그러나 각각 달랐습니다. 박가더러는 그들 일당의 성명과 구혈과 두목을 대라고 족쳤읍니다. 박가는 제가 그 도당에 참예한 것은 불었어도 그 욋것은 입을 꽉 다물고 실토를 안 했읍니다. 주리를 틀려 앞정강이의 살이 문드러지고 허연 뼈가 비어져도 그는 불지를 않았읍니다.    일변 윤용규더러는 네가 그 도당과 기맥을 통하고 있고 그패들에게 재물과 주식을 대접했다는 걸 자백하라고 문초를 합니다. 박가의 실토를 들으면 과시 네가 적당과 연맥이 있다고 하니, 정 자백을 안하면 않는대로 그냥 감영으로 넘겨 목을 베게 하겠다는 것이었읍니다.  이것이, 좀 먹자는 트집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속이었고 그래 누가 이러라 저러라 시킬 것도 없이 벌써 줄 맞은 병정이 되어서, 젊은 윤두꺼비는 뒷줄로 뇌물을 쓰느라고 .. 2024. 7. 29.
채만식 '태평천하' 21 - 달포 전인데 이 패에게 노략질을...... 달포 전인데 이 패에게 노략질을 당하던 날 밤, 그 중에  한 놈, 잘 알 수 있는 자가 섞여 있는 것을 윤용규는 보아 두었읍니다. 그자는 박가라고, 멀리 않은 근동에서 사는 바로 그의 작인이었읍니다. "오! 이놈 네가!"   윤용규는 제 자신, 작인에게 어떠한 원한받을 짓을 해왔다는 것은 경위에 칠 줄은 모릅니다. 다만 내 땅을 부쳐 먹고 사는 놈이 이 도당에 참예를 하여 내 집을 털러 들어오다니, 눈에서 불이 나고 가슴이 터질 듯 분한 노릇입니다.  이튿날 새벽같이 윤용규는 몸소 읍으로 달려들어가서, 당시 그 고을 원(수령)이요, 수차 토색질을 당한 덕에 안면은 있는 백영규(白永圭)더러, 사분이 이만저만하고 이러저러한데 그 중에 박아무개라는 놈도 섞여 있었다고 그러니 그놈만 잡아다가 족치거드면 그 일.. 2024. 7. 23.
채만식 '태평천하' 20 - 사실 윤용규는......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6   사실 윤용규는 무식하고 소박하나마 시대가 차차로 금권이 유세해 감을 막연히 인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비단 화적떼에게만 대한 선언인 것이 아니라, 그 야속하고 토색질을 방자히 하는 수령까지도 넣어, 전 압박자에게 대고 부르짖는 선전의 포고이었을 것입니다. 가령 그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고 못 하고는 고만두고라도...... 말입니다. "......이놈들! 밤이 어둡다구, 백년 가두 날이 안 샐 줄 아느냐? 두구 보자, 이놈들!"   윤용규는 연하여 이렇게 살기등등하니 악을 쓰는 것입니다. "하, 이놈, 희떠운 소리 헌다! 허!"   두목은 서글퍼서 이렇게 헛웃음을 치는데, 마침 윗목에서 이제껏 자고 있던 차인꾼이 그제야 잠이 깨어 푸스스 일어나다가 한참 ..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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