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태평천하' 35 - 실상 윤직원 영감은......
실상 윤직원 영감은 저편이 싸움을 돕는 줄을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 알고서도,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고 넌지시 늦추 잡도리를 하느라, 고씨가 처음 꽥소리를 칠 때도 손자며느리와 딸을 건너다보면서, "저, 짝 찢을 년은 왜 또 지랄이 나서 저런다냐!" 하고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서울아씨는 친정아버지를 따라 입을 삐죽거리고, 두 손자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박씨만 조심조심 경손을 나무라느라고 마루로 나오고, 경손이가 온 줄 안 태식은 미닫이의 유리로 밖을 내다보다가 도로 오더니, "아빠 아빠, 저 경존이 잉? 깍쟁이 자직야, 잉? 아주 옘병헐 자직이야!" 하고 떠듬떠듬 말재주를 부리고 했습니다. "아서라! 어디서 그런……." "잉? 아빠, 경존이 깍쟁이 자직야. 도족놈의..
2025. 1. 19.
채만식 '태평천하' 30 - 이 고씨는, 말하자면 이 세상......
이 고씨는, 말하자면 이 세상 며느리의 썩 좋은 견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암캐 같은 시어머니, 여우나 꽁꽁 물어 가면 안방 차지도 내 차지, 곰방조대도 내 차지. 대체 그 시어머니라는 종족이 며느리라는 종족한테 얼마나 야속스러운 생물이거드면, 이다지 박절할 속담까지 생겼습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을 온 고씨는 올해 마흔일곱이니, 작년 정월 시어머니 오씨가 죽는 날까지 꼬박 삼십일 년 동안 단단히 그 시집살이라는 걸 해왔습니다. 사납대서 살쾡이라는 별명을 듣고, 인색하대서 진지리꼽재기라는 별명을 듣고, 잔말이 많대서 담배씨라는 별명을 듣고 하던 시어머니 오씨(그러니까 바로 윤직원 영감의 부인이지요), 그 손 밑에서 삼십일 년 동안 설운 눈물 많이 흘리고 고씨는 시집살이를 해오다가, 작년 정월..
2024.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