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라 차려서,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번 재 볼까 했다마는, 우리는 장인님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 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큼 가서
"제~미 키두!"
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말락 밤낮 요 모양이다. 개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다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가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심어서 뭘 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가 너무 먹은 걸 모르고 냇병이라나 그배)를 불리기 위하여 심곤 조금도 싶지 않다.
" 아이구 배야"
○ 지레 : 어떤 일 또는 기회가 일어나거나 무르익기 전에 미리
○ 명색(名色) : 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
○ 데릴사위 : 처가에서 데리고 사는 사위
○ 숙맥(菽麥) : 콩과 보리를 아울러서 이르는 말인데 사리분별을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빗대어 말할 때 쓰임
○ 눈어림 : 눈으로 보아 헤아리다/추정하다
○ 겨드랑 : 겨드랑이
○ 궁리(窮理) :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함.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
○ 서낭당 : 서낭신을 모신 집. 성황당 ※ 서낭신 = 토지와 마을을 지켜 준다는 신
○ 고사(告祀) : 액운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며 집안에서 신에게 음식을 차려 놓고 비는 제사
○ 불거지다 : 물체의 거죽으로 둥글게 툭 비어져 나오다.
○ 냇병 : 내병(內病) , 몸 안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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