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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김유정-봄봄

김유정 '봄봄'6 - 그 전날 왜......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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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전날 왜 내가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몸살을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 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 반도 갈지 않아서 온몸의 맥이 풀리고 대고 짜증만 만다. 공연히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안야! 안야! 이 망할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대리를 꺽어 줄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안냐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구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 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몽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로 커단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 새고개 : 이름 없는 고갯길, 

○ 화전밭 : 주로 산간 지대에서 풀과 나무를 불살라 버리고 그 자리에 농사를 짓는 밭

○ 가생이 : 가장자리

○ 꽃내 : 꽃내음     ※ 내음 = 향기

○ 봄볕 : 봄햇빛

○ 대리 : 다리

○ 개떡 : 노깨, 나깨 보릿겨 따위를 반죽하여 찐 떡, 몸생기거나 나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때 비유하여 이르는 말

○ 툽툽하다 : 생김새가 멋이 없고 투박하다.

○ 훤칠하다 : 길고 미끈하다

○ 헐없다 : 말할 것도 없다. 두말할 나위 없다.

○ 감참외 : 살이 잘 익은 감빛처럼 붉은 참외

○ 서글서글하다 : 성질이나 생김새가 부드럽고 상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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