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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채만식-태평천하

채만식 '태평천하' 14 - 그런지라 윤직원 영감은......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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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양국 명창대회 - 5

 

 

  그런지라 윤직원 영감은 여느 때 같으면 삼남이가 나와서 그렇게 허리를 굽신하면, 그저 오-냐 하고 좋게 대답을 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래저래 역정이 난 판이라 누구든지 맨 처음에 눈에 띄는 대로 소리를 우선 버럭 질러 주어야 할 판입니다.

 

"야 이놈아! 어떤 손모가지가 문은 그렇기 훠어언허게 열어 누왔냐? 응?"

"저는 안 그龶어라우! 아마 중마내님이 금방 들어오꽆넌디, 그렇게 열어 누왔넝개비라우?"

 

  중마나님이라는 건 윤직원 영감의 며느리로 지금 이 집의 형식상 주부(主婦)입니다.

 

" 그龶으리라! 짝 찢을 년!"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더러 이렇게 욕을 하던 것입니다. 그는 며느리뿐만 아니라, 딸이고 손자며느리고, 또 지금은 죽고 없지만 자기 부인이고, 전에 데리고 살던 첩이고, 누구한테든지 욕을 하려면 우선 그 '짝 찢을 년'이라는 서양말의 관사(冠詞) 같은 것을 붙입니다. 남잘 것 같으면 '잡어 뽑을 놈'을 붙이고......

 

"짝 찢을 년......! 아, 그년은 무엇하러 밤낮 그렇기 싸댕긴다냐?"

"모올라우!"

"옳다, 내가 모르넌디 늬가 알 것이냐......! 짝 찢을 년! 그년이 서방이 안 돌아부아 주닝개 오두가 나서 그러지, 오두가 나서 그리여!"

"아마 그렁개비라우!"

 

  관중이 없어서 웃어 주질 않으니 좀 섭섭한 장면입니다.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쌍소리로 며느리며 누구 할 것 없이 아무한테고 욕을 하는 것은, 그의 입이 험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근지(根地)가 인조견이나 도금비녀처럼 허울뿐이라 그렇다고도 하겠습니다. 윤직원 영감의 근지야 참 보잘 게 별양 없습니다.


* 그래저래 : 그러하고 저러한 모양으로, 또는 그런저런 이유로

* 역정 : 몹시언짢거나 못마땅하여서 내는 성

* 손모가지 : 손, 손목을 낮잡아 부르는 말

* 관사 : 영어의 단수, 복수, 성, 격 따위를 나타내는 품사

* 오두 :  오두방정

* 근지 :  사물의 본바탕, 자라 온 환경과 경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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