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4
화적이 인가를 쳐들어와서 잡아 족치는 건 그 집 대주(戶主)와 셈든 남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고 보면 우선......(원문탈락)...... 반죽음은 되게 매를 맞아야 합니다. 그렇게 얻어맞고도 마침내는 재물은 재물대로 뺏겨야 하고 그 서슬에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왔다갔다합니다. 둘이 잡히면 둘이 다, 셋이 잡히면 셋이 다 그 지경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제가끔 먼저 기수를 채는 당장으로 아비를 염려해서 주춤거리거나 자식을 생각하여 머뭇거리거나 할 것이 없이 그저 먼저 몸을 피해 놓고 보는 게 당연한 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럴 것이, 가령 자식이 아비의 위태로움을 알고 그냥 버틴다거나 덤벼든다거나 했자, 저편은 수효가 많은데다가 병장기를 가진 그리고 사람의 목숨쯤 파리 한 마리만큼도 여기잖는 패들이니까요.
이날 밤 윤두꺼비도 그리하여 일변 몸져 누운 부친이 마음에 걸려 선뜻 망설이기는 하면서도 사리가 그러했기 때문에 이내 제 몸을 우선 피해 놓고 보던 것입니다.
말대가리 윤용규는 아니 이미 육십에 또 어제까지 등이며 볼기며에 모진 매를 맞다가 겨우 옥에서 놓여 나온 몸이라 도저히 피할 생각은 내지도 못하고 그 대신 침착하게 일어나 앉아 등잔에 불까지 켰습니다. 가위 당하는 일이라서 또 있는 담보겠다 악으로 한바탕 싸워 보자는 것입니다.
화적패들은 이윽고 하나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 빗장을 벗기는대문으로 우- 몰려 들었습니다.
"개미새끼 하나라도 놓치지 말렷다!"
그 중 두목이, 대문 지키는 두 자와 옆으로 비어져 가는 파수 둘더러 호령을 하는 것입니다.
"영 놓치겠거든 대구 쏘아라!"
재우쳐 이른 뒤에 두목이 앞장을 서서 사랑채로 가고, 한패는 안으로 갈려 들어갑니다. 그렇게도 사납고 짖기를 극성으로하는 이 집 개들이 처음부터 찍소리도 못 내고 낑낑거리면서 도리어 주인네의 보호를 청하는 걸 보면, 당시 화적들의 기세가 얼마나 기승스러웠음을 족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집이나 어린것들은 손대지 말렷다!"
두목이 잠깐 돌아다니면서 신칙을 하는 데 응하여 안으로 들어가던 패가 몇이,
"예-이!"
하고 한꺼번에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스러운 그네들의 엄한 풍도입니다. 이 밤에 이 집을 쳐들어온 이 패들만 보아도, 패랭이 쓴 놈, 테머리 한 놈, 머리 땋은 놈, 늙은이 해서 차림새나 생김새가 가지각색이듯이, 모두 무질서하고 무지한 잡색 인물들이기는 하나, 일반으로 그들은 어느 때 어디를 쳐서 갖은 참상을 다 저지르곤 할 값에, 좀체로 부녀와 어리아이들한테만은 손을 대는법이 없습니다.
만일 그걸 범했다가는 그는 당장에 두목 앞에서 목이 달아나고라야 맙니다.
* 셈들다 : 사물을 분별하는 판단력이 생기다. 철들다. 철나다
* 기수(幾數) : 어떤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
* 빗장 : 문을 닫고 가로질러 잠그는 막대기
* 재우치다 : 빨리 몰아치거나 재촉하다
* 풍도 : 풍체와 태도
* 패랭이 : 댓개비로 엮어 만든 갓. 조선시대 역졸,보부상 같은 사람들이 썼다.
☞ 댓개비 = 대(나무)를 쪼개 가늘게 깎은 긴 조각
* 테머리 : ??? , 머리 둘레(이마)를 수건같은 것으로 둘러 머리나 땀이 흘러 내리지 않게 한 머리->개인적인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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