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그런데 피장파장이어서 화적패도 또한 말대가리 윤용규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동료 박가를 찔러서 잡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박가가 잡혀가서 그 모진 혹형을 당하면서도 구혈이나 두목이나 도당의 성명을 불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런 만큼 의리가 가슴에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윤용규한테 대한 원한은 우선 접어 놓고 어디 일을 좀 무사히 펴이게 하도록 해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첫 꾀였습니다. 만약 그런 꾀가 아니라면야 들어서던 길로 지딱지딱 해버리고 돌아섰을 것이지요.
두목은 윤용규가 전번과는 달라 악이 바싹 올라 가기고 처음부터 발딱거리면서 뻣뻣이 말을 못 듣겠노라고 버티는 데는 물큰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이냐"
그는 눈을 부라리면서 딱 을러댑니다. 그러나 윤용규는 종시 까닥 않고 대답입니다.
"다시 더 물을 것 띴너니라"
"너, 그리 고집 세지 말아!"
두목은 잠깐 식식거리면서 윤용규를 노리고 보다가 이윽고 음성을 눅여 타이르듯 합니다.
"......그러다가는 네게 이로울 게 없다. 잔말 말구, 네가 뒤로 나서서 삼천 냥만 뇌물을 써라. 너두 뇌물을 쓰구서 뇌여 나왔지? 그럴 테면 네가 옭아 넣은 내 수하도 풀어 놓아 주어야 옳을게 아니냐......? 허기야 너를 시키느니 내가 내 손으로 함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당장 삼천 냥이 없고 그걸 장만하자면 너 같은 놈 열 놈의 집은 더 털어야 하니 시급스럽게 안 될 말이고 또 내가 나서서 뇌물을 쓰다가는 됩다 위태할 것이고 허니 불가불 일은 네가 할 수밖에 없다. 허되 급히 서둘러야지 며칠 안 있으면 감영으로 넹긴다드구나?"
두목은 끝에 가서는 거진 사정하듯 목마른 소리로 말을 맺고서 윤용규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윤용규는 그러나 싸늘하게 외면을 하고 앉아서 두목이 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체합니다.
"......어쩔 테냐? 한다든 못 한다든, 대답을......"
두목은 맥이 플리는 대신 다시 울화가 치받쳐 버럭 소리를 지르다 말고 입술을 부르르 떱니다.
"못 한다!"
윤용규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지릅니다.
"...... 네놈들이 죄다 잡혀가서 목이 쓸리기를 축원허구 있는 내다, 됩다 한 놈이라두 뇌여 나오라구, 내 재물을 들여서 뇌물을 써? 흥! 하늘이 무너져두 못 헌다!"
"진정이냐?"
"오-냐!"
* 피장파장 : 서로 낫고 못함이 없음
* 화적/패 : 화적(火賊) =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 / 패 = 같이 어울려 다는 사람의 무리
* 혹형(酷刑) : 가혹하게 벌함 ※ 酷 독할 혹, 刑 형벌 형
* 지딱지딱 : 서둘러서 일 따위를 하는 모양
* 물큰 : 냄새 따위가 한꺼번에 확 풍기는 모양
* 으르다 : 겁을 먹도록 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하다.
* 됩다 : '도리어'의 방언
* 불가불(不可不) : 하지 않을 수 없어
* 울화(鬱火) : 마음속이 답답하여 일어나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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