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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채만식-태평천하

채만식 '태평천하' 22 - 문초는 그러나 각각......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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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초는 그러나 각각 달랐습니다. 박가더러는 그들 일당의 성명과 구혈과 두목을 대라고 족쳤읍니다. 박가는 제가 그 도당에 참예한 것은 불었어도 그 욋것은 입을 꽉 다물고 실토를 안 했읍니다. 주리를 틀려 앞정강이의 살이 문드러지고 허연 뼈가 비어져도 그는 불지를 않았읍니다.

  

  일변 윤용규더러는 네가 그 도당과 기맥을 통하고 있고 그패들에게 재물과 주식을 대접했다는 걸 자백하라고 문초를 합니다. 박가의 실토를 들으면 과시 네가 적당과 연맥이 있다고 하니, 정 자백을 안하면 않는대로 그냥 감영으로 넘겨 목을 베게 하겠다는 것이었읍니다.

 

 이것이, 좀 먹자는 트집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속이었고 그래 누가 이러라 저러라 시킬 것도 없이 벌써 줄 맞은 병정이 되어서, 젊은 윤두꺼비는 뒷줄로 뇌물을 쓰느라고 침식을 잊고 분주했읍니다.

  오백 냥씩 두 번 해서 천 냥은 수령 백영규가 고스란히 먹고, 또 천 냥은 가지고 이방 이하 호방이야, 형방이야, 옥사정이야, 사령이야, 심지어 통인 급창까지 고루 풀어 먹였읍니다. 

  이천 냥 돈을 그렇게 들이고서야, 어제 아침 달포 만에 말대가리 윤용규는 장독(杖毒)으로 꼼짝못하는 몸을 보교에 실려 옥으로부터 집으로 놓여 나왔던 것입니다.

 

  사맥이 이쯤 되었으니 윤용규로 앉아서 본다면 수령 백영규한테와 화적패에게 원한이 자못 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원한이 깊었자 저편은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수령이라 그 만만하달까, 화적패에게 잔뜩 보복을 벼르고 있었고, 그런 참인데 마침 그 도당이 또 다시 달려 들어서는 이러니저러니 하니 그야말로 갈아 먹고 싶을 것은 인간의 옹색한 속이 아니라도 당연한 근경이라 하겠지요.


* 문초(問招) : 죄나 잘못을 따져 묻거나 심문한.

* 구혈 : ?

* 참예(參預) :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

* 실토(實吐) : 거짓 없이 사실대로 다 말함.

* 주리 : 죄인의 두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워 비트는 형벌

* 일변(一邊) : 어느 한편

* 기맥(氣脈) : 기혈이 통하는 맥락, 서로 통할 수 있는 낌새나 분위기

* 과시(果是) :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 감영(監營) : 조선 시대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아   ※관찰사 = 지금의 도지사급

* 사령(使令) : 조선 시대 각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사람

* 급창(及唱)(이) : 조선 시대  관아에 속하여 원의 명령을 간접적으로 받아 큰 소리로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던 사내종

* 달포 : 한 달

* 장독(杖毒) : 매을 심하게 맞아 생긴 상처의 독

* 보교(步轎) : 사람이 매는 가마의 하나.

* 사맥(事脈) : 일의 내력과 갈피

* 옹색(壅塞)하다 : 생각이 막혀서 답답하고 옹졸하다.

* 근경 : 가까운 부근의 일대. 어떤 사실과 비슷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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