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임승차기술 - 2
라디오를 프로그램대로 음악을 조종하는 소임은 윤직원 영감의 차인 겸 비서 겸 무엇 겸 직함이 수두룩한 대복(大福)이가 맡아 합니다.
혹시 남도 소리나 음률 가사 같은 것이 없는 날일라치면 대복이가 생으로 벼락을 맞아야 합니다.
"게, 밥은 남같이 하루에 시 그릇썩 먹으먼서, 그래, 어떻기 사람이 멍청허먼, 날마당 나오던 소리를 느닷띴이 못 나오게 헌담 말잉가?"
이러한 무정지책에 대복이는 유구무언, 머리만 긁적긁적합니다.
하기야 대복이도 처음 몇 번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그렇게 정했으니까, 집에 앉아서야 라디오를 아무리 주물러도 남도 소리는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변명을 했더랍니다.
한다 치면, 윤직원 영감은 더럭,
"법이라니께? 그런 개× 같은 놈의 법이 어딨당가……? 권연시리 시방 멍청허다구 그러닝개, 그 말은 그리두 고까워서 남한티다가 둘러씨니라구……? 글씨 어떤 놈의 소리가 금방 엊저녁까지 들리던 소리가 오널사 말구 시급스럽게 안 들리넝고? 지상(기생)이랑 재인광대가 다아 급살맞어 죽었다덩가?"
이렇게 반찬 먹은 고양이 잡도리하듯 지청구를 하니, 실로 죽어나는 건 대복입니다.
방송국에서 한동안, 꼭 같은 글씨로, 남도 소리를 매일 빼지 말고 방송해 달라는 투서를 수십 장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게 뉘 짓인고 하니, 대복이가 윤직원네 영감한테 지청구를 먹고는 홧김에 써보고, 핀잔을 듣고는 폭폭하여 써보내고 하던, 그야말로 눈물의 투서였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불평은 그러나 비단 그뿐이 아닙니다.
소리를 기왕 할 테거든 두어 시간이고 서너 시간이고 붙박이로 하지를 않고서, 고까짓 것 삼십 분, 눈 깜짝할 새 감질만 내다가 그만둔다고, 그래서 또 성퇓니다.
물론 투정이요, 실상인즉 혼자 속으로는, 그놈의 것 돈 십칠 원 들여서 사놓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면서 그 재미를 다 보니, 미상불 헐키는 헐타고 은근히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막상 청취료 일 원야라를 현금으로 내주는 마당에 당해서는 라디오에 대한 불평 겸 돈 일 원이 못내 아까워서,
"그까짓 놈의 것이 무엇이라구 다달이 돈을 일 원씩이나 또박또박 받어 간다냐?"
"그럴 티거든 새달버텀은 그만두래라!"
이렇게 끙짜를 하기를 마지않습니다.
라디오는 그리하여 아무튼 그러하고, 그 다음이 명창대횝니다.
* 수두룩하다 : 매우 많고 흔하다
* 느닷띴이 : 느닷없이
* 무정지책(無情之責) : 아무 까닭 없이 책망함. 또는 그런 책망
* 잡도리 : 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 족치는 일
* 지청구 : 까닭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함. 아랫 사람의 잘못을 꾸짓는 말
* 핀잔 : 맞대어 놓고 언짢게 꾸짖거나 비꼬아 꾸짖는 일
* 감질 : 바라는 정도에 아주 못 미쳐 애타는 마음
* 새달버텀 : 새달부터 (다음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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