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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채만식-태평천하

채만식 '태평천하' 4 - 인력거꾼은 괜히......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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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직원 영감 귀택지도(歸宅之圖) - 4

 

  인력거꾼은 괜히 돈 몇십 전 더 얻어먹으려다가 짜장 얻어먹지도 못하고 다른 데 벌이까지 놓치지 싶어, 할 수 없이 오십 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여전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시방, 나허구 실갱이를 허자구 이러넝가? 권연시리 자꾸 쓸디띴넌 소리를 허구 있어……! 아, 이 사람아, 돈 오십 전이 뉘 애기 이름인 종 아넝가?"

    "많이 여쭙잖습니다. 부민관서 예꺼정 모시구 왔는뎁쇼!"

    "그러닝개 말이네. 고까짓것 엎어지먼 코 달 년의 디를 태다 주구서 오십 전씩이나 달라구 허닝개 말이여!"

    "과하게 여쭙잖었습니다. 그리구 점잖은 어른께서 막걸릿값이나 나우 주서야 허잖겠사와요?"

 

  윤직원 영감은 못 들은 체하고 모로 비스듬히 돌아서서 아까 풀렀다가 도로 비끄러맨 염낭끈을 다시 풀더니, 이윽고 십 전박이 두 푼을 꺼내 가지고 그것을 손톱으로 싸악싹 갓을 긁어 봅니다. 노상 사람이란 실수를 하지 말란 법이 없는 법이라, 좀 일은 되더라도 이렇게 다시 한번 손질을 해보면, 가사 십 전짜린 줄 알고 오십 전짜리를 잘못 꺼냈더라도, 톱날이 있고 없는 것으로 아주 적실하게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옜네…… 꼭 십오 전만 줄 것이지만, 자네가 하두 그리싸닝개 이십 전을 주넝 것이니, 오 전을랑 자네 말대루 막걸리를 받어 먹든지, 탁배기를 사먹든지 맘대루 허소. 나넌 모르네!"

    "건 너무 적습니다!"

    "즉다니? 돈 이십 전이 즉담 말인가? 이 사람아 촌으 가먼 땅이 열 평이네, 땅이 열 평이여!"

 

  인력거꾼은, 그렇거들랑 그거 이십 전 가지고 촌으로 가서 땅 열 평 사놓고서 삼대 사대 빌어먹으라고 쏘아던지고서 홱 돌아서고 싶은 것을, 그러나 겨우 참습니다.

   

    "십 전 한 푼만 더 줍사요. 그리구 체두 퍽 무거우시구 허셨으니깐, 헤……."

    "아―니, 이 사람이 인재넌 벨 트집을 다아 잡을라구 허네! 이 사람아, 그럴 티먼 나넌 이 큰 몸집으루 자네 그 쬐외깐헌 인력거 타니라구 더 욕을 부았다네. 자동차나 기차나, 몸 무겁다구 돈 더 받넌 디 부았넝가?"

    "헤헤, 그렇지만……."

    "어쩔 티여? 이것 받어 갈랑가? 안 받어 갈랑가? 안 받어 간다먼 나 이놈으루 괴기 사다가 야긋야긋 다져서 저녁 반찬이나 히여 먹을라네."

    "거저 십 전 한 푼만 더 쓰시면 허실 걸 점잖어신 터에 그러십니다!"

    "즘잔? 이 사람아, 그렇기 즘잖을라다가넌 논 팔어 먹겄네……! 에잉 그거 참! 그런 인력거꾼 두 번만 만났다가넌 마구 감수(減壽)허겄다……!"

 

  이 말에 인력거꾼이 바른 대로 대답을 하자면, 그런 손님 두 번만 만났다가는 기절하겠다고 하겠지요. 윤직원 영감은 맸던 염낭끈을 또 도로 풀더니, 오 전박이 한 푼을 더 꺼냅니다. 이 오 전은 무단스레 더 주는 것이거니 생각하면 다시금 역정이 나고 돈이 아까웠지만, 인력거꾼이 부둥부둥 떼를 쓰는 데는 배겨 낼 수가 없다고, 진실로 단념을 한 것입니다.

   

    "……거 참……! 옜네! 도통 이십오 전이네. 이제넌 자네가 내 허리띠에다가 목을 매달어두 쇠천 한푼 막무가낼세!"

 

  인력거꾼은 윤직원 영감이 말도 다 하기 전에 딸그랑하는 대소 백통화 서 푼을 그 육중한 손바닥에다가 받아 쥐고는 고맙다고 하는지 무어라고 하는지 분명찮게 입 안의 소리로 두런거리면서, 놓았던 인력거 채장을 집어 들고 씽하니 가버립니다.

 

    "에잉! 권연시리 그년의 디를 갔다가 그놈의 인력거꾼을 잘못 만나서 실갱이를 허구, 애맨 돈 오 전을 더 쓰구 히였구나! 고년 춘심이년이 방정맞게 와서넌 명창대횐(名唱大會)지 급살인지 헌다구, 쏘사악쏘삭허기 때미 그년의 디를 갔다가……."

 

  윤직원 영감은 역정 끝에 춘심이더러 귀먹은 욕을 하던 것이나, 그렇지만 그건 애먼 탓입니다. 왜, 부민관의 명창대회를 무슨 춘심이가 가자고 해서 갔나요? 춘심이는 그저 부민관에서 명창대회를 하는데, 제 형 운심이도 연주에 나간다고 자랑삼아 재잘거리는 것을, 윤직원 영감 자기가 깜짝 반겨선, 되레 춘심이더러 가자가자 해서 꾀어 가지고 갔으면서…….  사실 말이지, 춘심이가 그런 귀띔을 안 해주었으면 윤직원 영감은 오늘 명창대회는 영영 못 가고 말았을 것이고, 그래서 다음날이라도 그걸 알았으면 냅다 발을 굴렀을 것입니다.


* 시방 : 말하는 바로 이때. 지금

* 실갱이 : '실랑이'의 비표준어     ※ 실랑이 =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

* 권연시리 : 공연스레 

* 쓸디 : 쓸데

* 쓸디띴넌 : ????

* 탁배기 : 막걸리

* 야긋야긋 : 톱날처럼 높고 낮은 차이가 적고 어슷비슷한 모양

* 백통화 : 백통(구리와 니켈의 합금)으로 만든 돈

* 채장(?) : 인력거의 앞부분(운행을 위한 손잡이/운전대)? 

* 애먼 :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지는

* 명창 : 뛰어나게 잘 부르는 노래 혹은 노래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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