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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채만식-태평천하

채만식 '태평천하' 2 - 인력거에서 내려 선 윤직원 영감은......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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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직원 영감 귀택지도(歸宅之圖)-2

 

  인력거에서 내려 선 윤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 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파란 염낭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이) 몇 푼이당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 게 좀 경망스럽습니다.

    "그저 처분해 줍사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낀 허리를 굽신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히 생각해 달란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뚜렛뚜렛하다가, 혹시 외상인가 하고 뒤통수를 긁적긁적하면서,

    "그럼, 내일 오랍쇼니까?"

    "내일? 내일 무엇 하러 올랑가?"

  윤직원 영감은 지금 심정이 약간 좋지 못한 일이 있는데, 가뜩이나 긴찮이 잔말을 씹힌대서 적이 안색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편 인력거꾼으로 당하고 보면, 무엇 하러 오다니, 외상 준 인력거 삯 받으러 오지요라는 것이지만, 어디 무엄스럽게 그런 말을 똑바로 대고 하는 수야 있나요. 그러니 말은 바른 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 자못 난처한 판인데, 남의 그런 속도 몰라주고 윤직원 영감은 인제는 내 할 말 다아 했다는 듯이 천천히 돌아서 버리자고 합니다.

  인력거꾼은, 이러다가는 여느 때도 아니요, 허파가 터질 뻔한 오늘 벌이가 눈 멀뚱멀뚱 뜨고 그만 허사가 되지 싶어, 대체 이 어른이 어째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어도, 그건 어찌 되었든지 간에 좌우간 이렇게 병신스럽게 우물쭈물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고 크게 과단을 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어, 삯 말씀이올습니다. 헤……."

크게 과단을 낸다는 게 결국은 크게 조심을 하는 것뿐입니다.

    "싹?"

    "네에!"

    "아―니 여보소,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더러 역정을 내어 하마 삿대질이라도 할 듯이 한 걸음 나섭니다.

    "……자네가 아까 날더러 처분대루 허라구 허잖있넝가?"

    "네에!"

    "그렇지……? 그런디 거, 처분대루 허람 말은 맘대루 허람 말이 아닝가?"

  인력거꾼은 비로소 속을 알았습니다.


* 앞섶 : 옷의 앞자락에 대는 섶      ※ 섶 :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이 깃 아래쪽에 달리 긴 헝겊

* 염낭 : 허리에 차는 작은 주머니로 아가리에 주름을 잡고 끈 두개를 좌우로 꿰어서 동여맨다.

* 삯 : 일한 데 대하여 주는 돈이나 물건     ※ 유사어 = 품값

* 항투 : 항상 쓰는 말투

* 짯짯이 : 딱딱하고 깔깔한 성미로

* 비끄러매다 : 줄이나 끈 따위로 서로 떨어지지 못하게 붙잡아 매다

* 뚜렛뚜렛 : 어리둥절하여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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