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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현진건-운수 좋은 날

현진건 '운수 좋은 날' 6 - 선술집은 훈훈하고......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3.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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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도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 들었을 제 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를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배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일세.”

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 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그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 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살 됨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 놈, 왜 술을 붓지 않어.”

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을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 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칫훔칫하더니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 흰김 : 흰 김

* 너비아니구이 : 얇게 저민 뒤 양념을 하여 구운 쇠고기

* 먹음먹이 : 먹음직한 음식들

* 깡그리 : 하나도 남김없이

* 쪼이다 : 뽀족한 끝을 쳐져 찍히다.(젓가락으로 빈대떡을 찢는 모양으로 생각됨???)

* 미꾸리 : '미꾸라지'의 사투리

* 더웠다 : 더 왔다

* 원원이 : 어떤 사물이 전하여 내려온 그 처음부터 혹은 본디부터

* 찌르를 : 찌르르 

* 개개 : 각자 따로

* 숭덩숭덩 : 연한 물건을 조금 큼직하고 거칠게 자꾸 빨리 써는 모양

* 오라질 : 오라에 묶여 갈 만하다라는 뜻으로 미워하는 대상이나 못마땅한 일에 대하여 비난 혹은 불평을 할 때 하는 욕

* 사품 : 어떤 동작이나 일이 진행되는 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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