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밖이었다. 노동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절히 느끼었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비를 맞으며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를 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비가 왜 남의 상판을 딱딱 때려!”
그는 몹시 화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쌀이 무서우니 정거장 앞에 섰을 수는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 앞 전차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지게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얼마 만에 기차는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손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는 김첨지의 눈엔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편네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만지가 한참은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구걸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의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제 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치않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 어슬어슬 : 날이 어두워지거나 밝아질 무렵에 둘레가 조금 어두운 모양
* 옹송그리다 : 춥거나 무서움에 몸을 웅크리는 것
* 상판 :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
* 화증 : 걸핏하면 화를 왈칵 내는 증세
* 괴상 : 怪(괴이할 괴) 狀(형상 상). 괴이하고 이상한 모양
* 요행 : 뜻밖에 얻은 행운
* 등쌀 : 몹시 귀찮게 구는 짓
* 난봉 : 허랑방탕한 짓
* 여편네 : 결혼한 여자, 혹은 자기 아내를 낮추어 이르는 속어
* 슬근슬근 : 물체가 서로 맞닿아 가볍게 스치며 자꾸 비벼지즌 모양. 힘을 들이지 않고 슬그머니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
* 만지 : 아닌지
* 때깔 : 눈에 선뜻 드러나 비치는 맵시나 빛깔
* 연해연방 : 끊임없이 잇따라 자꾸
* 추근추근(하다) : 성질이나 태도가 끈덕지고 질기다.
* 버들고리짝 : 키버들의 가지로 결어 만든 상자, 주로 옷을 넣는 데 쓴다.
※ 키버들 = 바드나뭇과의 낙엽 관목.
※ 겯다 = 대, 갈대, 싸리 따위로 씨와 날이 서로 어긋나게 걸치거나 맟추어 엮어 짜다.
* 귀치않게 : 귀찮게
* 어랍시오 : 어럽쇼, '어어'를 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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