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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현진건-운수 좋은 날

현진건 '운수 좋은 날' 1 - 새침하게 흐린......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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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우리 함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어 봐요! ^^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

   문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마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東光學校)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전 , 둘째 번에 오십전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짜리 백동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 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 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흡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 새침하다 : 쌀쌀맞게 시치미를 떼는 태도를 하다

○ 추적추적 : 비나 진눈깨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모양

○ 동소문 : '혜화문'을 달리 이르는 말 ,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 

○ 첨지 : 나이 많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 조선 시대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 마마(님) : 조선시대 아랫 사람이 상궁을 높여 이르던 말 / 벼슬아치의 첩을 높여 이르던 말 / 예전에 존대의 뜻으로 임금과 그 가족들의 칭호 뒤에 쓰이던 말.

○ 어정어정 : 키가 큰 사람이나 짐승이 이리저리 천천히 걷는 모양

○ 동광학교 : 일제 강점기 초기에 세워진 불교 계열의 교육기관, 후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합병.

○ 댓바람 : 아주 이른 시간

○ 흉치 : 흉하지 , 일이 나쁘거나 궂다

○ 옴 : 사람의 피부나 털에 기생하는 작은 진드기 /  옴진드기가 기생하여 일으키는 전염 피부병.

○ 전(錢) : 화폐 단위로 조선시대 10문 = 1전, 10전=1냥, 개항 이후 10푼 = 1전, 10전 = 1냥, 1894년 이후 1원 = 100전  

○ 컬컬하다 : 목이 목시 말라서 물이나 술 따위를 마시고 싶은 느낌이 있다. / 목소리가 쉰 듯하고 거친 느낌이 있다.

○ 달포 : 한달

○ (1) 첩 : 약봉지에 싼 약의 뭉치를 세는 단위

○ 구태여 : 일부러 애써

○ 신조 : 굳게 믿어 지키고 있는 생각

○ 새로 : 커녕, 고사하고 , 그만두고

○ 모(로) : 옆(으로)

○ 오라질 : 오라에 묶여 갈 만하다의 뜻으로 미워하는 대상이나 못마땅한 일에 대하여 비난 혹은 불평할 때 욕으로 쓰는 말

    ※ 오라 : 도둑이나 죄인을 묶을 때에 쓰는 붉고 굵은 줄

○ 지랄 : 간질을 속되게 이르는 말 / 마구 법석을 뗠며 분별 없이 하는 행동

○ 조랑복 : 지지리 펴지 않는 보잘것 없는 복 / 짧게 타고난 복력

○ 흡뜨다 : 눈알을 위로 굴리고 눈시울을 위로 치뜨다

○ 눈시울 : 눈언저리의 속눈썹이 난 곳

    ※언저리 : 둘레의 가장자리 부분


※ 운수 좋은 말

1924년 6월 작가 현진건이 《개벽》에 발표한 사실주의 단편 소설. 조선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

 

※ 현진건(1900~1943)

작가, 소설가, 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일제 지배 하에 있는 민족의 수난적 운명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 묘사를 지향한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꼽힌다.

주요 작품으로는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 20여 편의 단편 소설과 7편의 중·장편 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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