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든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랐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그 돈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고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잇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런 진날은 좀 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이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갈 데로 갔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구른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 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 가는 듯하였다. 언 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지만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리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 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리우, 기차 놓치겠구먼.”
하고 탄 이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어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첨지는 인력거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하고, 김첨지는 또다시 달음질하였다. 집이 차차 멀어 갈수록 김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게 놀려야만 쉴새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쥠에 제 말마따나 십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 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아니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요.”
라고 깍듯이 재우쳤다.
○ 경련 : 근육이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수축하거나 떨게 되는 현상.
○ 유달리 : 여느 것과는 아주 다르게, 유독 다르게
○ 큼직한 : 꽤 큰
○ 열한 점, 두 점 : 열한 시, 두 시.
※ 중국말(한자어)에서 시간을 표시할 때 '점(點)' 자를 쓴다. 예) 2시30분 = 2點30分
○ 갑절 : 어느 수나 양을 두 번 합한 만큼
○ 잇수 : 리(里)수
○ 시오 리 : 10리(里)에 5리를 더한 거리
○ 진날 : 땅이 질척거릴 정도로 비나 눈이 오는 날
○ 거뿐하다 : 몸의 상태가 가볍고 상괘하다
○ 달름질 : 급히 뛰어 달려감
○ 곡성 : 소리 내어 우는 소리
○ 엉거주춤 : 아주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몸을 반쯤 굽히고 있는 모양
○ 다시금 : '다시'를 강조하는 말
○ 재우치다 : 어떤 행동이 잇따라 진행되다, 빨리 몰라치거나 채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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