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 놓을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의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 하고 울었다.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 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웃음 소리가 어떻게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은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고 정거장에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마님이신지 여학생이신지 (요새야 어디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가 있던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 타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홱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 굴어!’ 어이구 소리가 처신도 없지, 허허.”
웃음 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들이 사라도 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 육시 :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에 다시 목을 베는 형별을 더하는 것
* 풀매질 : 풀무질의 사투리. 김매다
* 궁리 :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
* 논다니 : 웃음과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 슬근슬근 : 힘을 들이지 않고 슬그머니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
* 처신 :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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