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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좋은날5

현진건 '운수 좋은 날' 8 - 치삼은 어이없이......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연해 코를 들이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엣기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김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가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때같이 .. 2023. 12. 15.
현진건 '운수 좋은 날' 7 - "여보게 돈 떨어졌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 놓을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의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 하고 울었다.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 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 2023. 12. 12.
현진건 '운수 좋은 날' 6 - 선술집은 훈훈하고......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도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 들었을 제 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를 하고 창.. 2023. 12. 7.
현진건 '운수 좋은 날' 3 -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든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랐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그 돈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고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2023. 11. 29.
현진건 '운수 좋은 날' 2 - 이 환자가 그러고도......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 (세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 팔십 전을 손에 쥔 김 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주머니가 다된 왜목 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 줄 김첨지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로..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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