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1920년대13

채만식 '태평천하' 23 - 일은 그런데 피자파장이어서...... 일은 그런데 피장파장이어서 화적패도 또한 말대가리 윤용규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동료 박가를 찔러서 잡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박가가 잡혀가서 그 모진 혹형을 당하면서도 구혈이나 두목이나 도당의 성명을 불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런 만큼 의리가 가슴에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윤용규한테 대한 원한은 우선 접어 놓고 어디 일을 좀 무사히 펴이게 하도록 해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첫 꾀였습니다. 만약 그런 꾀가 아니라면야 들어서던 길로 지딱지딱 해버리고 돌아섰을 것이지요.  두목은 윤용규가 전번과는 달라 악이 바싹 올라 가기고 처음부터 발딱거리면서 뻣뻣이 말을 못 듣겠노라고 버티는 데는 물큰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이냐"   그는 눈을 부라.. 2024. 8. 4.
채만식 '태평천하' 20 - 사실 윤용규는......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6   사실 윤용규는 무식하고 소박하나마 시대가 차차로 금권이 유세해 감을 막연히 인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비단 화적떼에게만 대한 선언인 것이 아니라, 그 야속하고 토색질을 방자히 하는 수령까지도 넣어, 전 압박자에게 대고 부르짖는 선전의 포고이었을 것입니다. 가령 그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고 못 하고는 고만두고라도...... 말입니다. "......이놈들! 밤이 어둡다구, 백년 가두 날이 안 샐 줄 아느냐? 두구 보자, 이놈들!"   윤용규는 연하여 이렇게 살기등등하니 악을 쓰는 것입니다. "하, 이놈, 희떠운 소리 헌다! 허!"   두목은 서글퍼서 이렇게 헛웃음을 치는데, 마침 윗목에서 이제껏 자고 있던 차인꾼이 그제야 잠이 깨어 푸스스 일어나다가 한참 .. 2024. 7. 15.
채만식 '태평천하' 19 - 사랑채로 들어간 두목이......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5   사랑채로 들어간 두목이 한 수하를 시켜 웃미닫이를열어 젖히고서 성큼 마루로 올라설 때에 그는 뜻밖에도 이편을 앙연히 노려보고 있는 말대가리 윤용규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두목은 주춤하지 않지 못했습니다. 그는 윤용규가 이 위급한 판에 한 발자국이라도 도망질을 치려고 서둘렀지, 이 다지도 대담하게, 오냐 어서 오란 듯이 버티고 있을 줄은 천만 생각 밖이었던 것입니다. 더욱 핏기 없이 수척한 얼굴에 병색을 띠고서도 일변 악이 잔뜩 올라 이편을 노려보는 그 머리 센 늙은이의 살기스런 양자가 희미한 쇠기름불에 어른거리는 양이라니 무슨 원귀와도 같습니다.   두목은 만약 제 등뒤에 수하들이 겨누고 있는 십여 대의 총부리와 녹슬었으나마 칼들과 몽둥이들과 도끼들이 없었으면.. 2024. 7. 1.
채만식 '태평천하' 18 - 화적이 인가를 쳐들어와서......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4   화적이 인가를 쳐들어와서 잡아 족치는 건 그 집 대주(戶主)와 셈든 남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고 보면 우선......(원문탈락)...... 반죽음은 되게 매를 맞아야 합니다. 그렇게 얻어맞고도 마침내는 재물은 재물대로 뺏겨야 하고 그 서슬에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왔다갔다합니다. 둘이 잡히면 둘이 다, 셋이 잡히면 셋이 다 그 지경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제가끔 먼저 기수를 채는 당장으로 아비를 염려해서 주춤거리거나 자식을 생각하여 머뭇거리거나 할 것이 없이 그저 먼저 몸을 피해 놓고 보는 게 당연한 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럴 것이, 가령 자식이 아비의 위태로움을 알고 그냥 버틴다거나 덤벼든다거나 했자, 저편은 수효가 많은데다가 병장기를 가.. 2024. 6. 23.
채만식 '태평천하' 17 - 젊은 윤두꺼비는 깜깜 어둔 방 안이라도......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3  젊은 윤두꺼비는 깜깜 어둔 방 안이라도 바깥의 달빛이 희유끄름한 옆문을 향해 뛰쳐나갈 자세로 고의춤을 걷어 잡으면서 몸을 엉거주춤 일으켰습니다. 보이지는 않으나 아내의 황급한 숨길이 바투 들리고 더듬어 들어오는 손끝이 바르르 떨리면서 팔에 닿습니다."어서! 얼른!"   아내의 쥐어짜는 재촉 소리는 마침 대문을 총 개머린지 몽둥인지로 들이 쾅쾅 찧는 소리에 삼켜져 버립니다. "아버님은?"   윤두꺼비는 뛰쳐나가려고 꼬느었던 자세와 호흡을 잠깐 멈추고서 아내더러 물어보던 것입니다. "몰라요...... 그렇지만...... 아이구 어서, 얼른!"   아내가 기색할 듯이 초초한 소리로 팔을 잡아 흝는 힘이 아니라도 윤두꺼비는 벌써 몸을 날려 옆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신발.. 2024. 6. 15.
채만식 '태평천하' 16 - 윤직원 영감(그때 당시는......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2  윤직원 영감(그때 당시는 두꺼비같이 생겼대서 윤두꺼비로 불리어지던 윤두섭) 그는 어려서부터 취리에 눈이 밝았고 약관에는 벌서 그의 선친을 도와 가며 그 큰 살림을 곧잘 휘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1903년 계묘년(癸卯年)부터는 고스란히 물려받은 삼천 석거리를 가지고 이래 삼십여 년 동안 착실히 가산을 늘려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부으로부터 십여 년 전, 가권을 거느리고 서울로 이사를 해오던 그때의 집계(集計)를 보면, 벼를 실 만 석을 받았고, 요즘 와서는 현금이 십만 원 가까이 은행에 예금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걸 미루어 보면 그는 과시 승어부(勝於父)라 할 것입니다.   하기야 그 양대(兩代)가 그 어둔 시절에 그처럼 치산을 하느라고(시절이 어두우니까 체계변이.. 2024. 6. 9.
채만식 '태평천하' 15 - 얼굴이 말(馬面)처럼 길대서......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1  얼굴이 말(馬面)처럼 길대서 말대가리라는 별명을 듣던 윤직원 영감의 선친 윤용규는 본이 시골 토반(土班)이더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전(衙前)이더냐 하면 실상은 아전질도 제법 해먹지 못했습니다. 아전질을 못 해먹은 것이 시방 와서는 되레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그때 당년에야 흔한 도서원(道書院)이나마 한 자리 얻어 하고 싶은 생각이 꿀안 같았어도, 도시에 그만한 밑천이며 문필이며가 없었더랍니다.   말대가리 윤용규 그는, 삼십이 넘도록 탈망 바람으로 삿갓 하나를 의관삼아 촌 노름방으로 으실으실 돌아다니면서 개평꾼이나 뜯으면 그걸로 되돌아 앉아 투전장이나 뽑기, 방퉁이질이나 하기, 또 그도 저도 못하면 가난한 아내가 주린 배를 틀어쥐고서 바느질품을 팔아 어린.. 2024. 6. 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