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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제

중동전쟁 정리하기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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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중동전쟁 - 이스라엘 독립전쟁 (1948~1949)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신경을 쓸 수 없게 되자 팔레스타인 지역은 무주공산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고 아랍인과 유대인 간의 충돌이 갈수록 심해졌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초기 이스라엘은 변변한 무기가 없었으나 후에 소련의 허가하에 체코슬라바키아에서 무기를 수입하면서 본격적인 무장을 하게된다. 다만 초기에 이스라엘이 별 무기을 가지지 못하고 공세도 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데 이는 팔레스타인인의 내부 파벌 싸움으로 스스로 패배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요드단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등 아랍연맹이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이 역시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었던 터라 제대로 훈련받은 정규군은 부족하고 군의 통솔은 미숙하고 작전능력도 부족하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엃혀있어 통합된 전쟁수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결국 이스라엘군에 패하고 1949년 휴전이 이루어진다.

 

◎ 2차 중동전쟁 - 수에즈 전쟁 (1956)

1956년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친소 노선을 펼치며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이에 크게 반발한 영국과 프랑스와 그리고 자기 나라의 선박이 수에즈 운하 통과를 못하게 되자 이에 반발한 이스라엘이 참가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질서유지 구실로 개입하는 그림으로 시작되었으나 실질적으로 거의 개입하지 못하고 이스라엘군이 혼자서 이집트를 박살낸다.- 물론 참여는 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과 아무런 상의없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분노한 미국이 전쟁 반대 및 유럽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 및 석유제재까지 가하고 소련 또한 이집트를 감싸며 핵공격 위협까지 가하는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견지디 못하고 1956년 11월 6일 UN의 중재로 영-프 연합군이 철군하고 57년 이스라엘군도 점령했던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 전쟁으로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결국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지분?)을 완전히 상실했다.

 

◎ 3차 중동전쟁 - 6일 전쟁 (1967)

1, 2차 중동전쟁 이후 국제정세나 여론이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작용하자 이스라엘은 UN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는 작전을 세우고 되고 이에 최단기간 다시 말해서 UN의 개입이 이루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영토을 점령 확보하는 전략을 세운다. 이후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선제 공경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67년 6월 5일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의 방공망을 우회해 이집트 공군기지를 기습공격하게 되는데 약 3시간동안의 공격으로 이집트 공군 450여 대 중 항공기 300여 대를 파괴하고 공군기지 및 레이더 기지를 모두 박살내게 된다. 이후 이스라엘 공군은 이집트 영토를 이집트군의 변변한 저항없이 돌아다니며 이집트군을 초토화하게 된다. 이후 전세의 상황이 심각해 지자 아랍연맹을 자처하는 요르단, 시리아 등이 전쟁에 참가하나 이 역시 그동안 착실히 무기를 개량하고 준비한 이스라엘의 최신 무기 앞에 박살나게 된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이 대패하면서 중동에서 서방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소련이 적극적으로 개입, 압박하게 되고 군사개입까지 시사하자 결국 이스라엘은 정전에 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상황이 종료되었다. 이때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후에 이집트에 반환) 골란고원 가자지구 요르단 강 서안지구 등을 점령 확보했다.

 

◎ 4차 중동전쟁 - 욤 키프르 전쟁(1973)

전쟁이 일어난 당일이 욤키푸르 유대교 전통의 속죄일이었기 때문에 욤키푸르 전쟁이라고도 한다. 또는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67녀 3차 중동전쟁에서 패배하여 시나이 반도와 골란고원을 잃은 이집트와 시리아는 와신상담한다. 군제를 개편하고 무기를 개량하고 소련에서 군사고문을 초빙하는 등 이스라엘에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이스라엘도 정보망을 통해 이러한 주변국의 정세를 파악하고 있었으나 그동안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특히 3차 중동전쟁에서 6일 만에 대승을 거두면서 아랍세력을 얕잡아보고 자만하게 된다. 결국 욤키프르라는 이스라엘의 대규모 휴일 기간이 시작되는 10월 6일 이스라엘의 많은 군인이 휴가를 떠나고 이스라엘의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이집트, 시리아 연합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기습을 가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여기에 이라크 요르단 모로코 사우디 리비아도 지원군을 보내게 된다. 

이스라엘군은 이집트의 기습공격에 시나이 반도에서 대패하게 되고 3차 중동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공군도 이집트의 지대공 미사일에 10% 전투기가 파괴되는 등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또한 전차 부대도 대저나미사일에 박살난다. 

결국 이스라엘은 급박한 상황이 되자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미국은 닉슨의 워터케이트 사건과 월남전 등으로 골치가 아푼 상황이어서 소련과 상의를 거쳐 이 문제를 UN에 회부하여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제3세계 및 중동에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한 소련의 이중행동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후 이스라엘 메이어 총리의 다 죽어가는 호소가 지속되고 암묵적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사용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소문도 퍼지자  미국 대통령 닉슨은 자신의 워터케이트 사건으로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지원을 밀어붙이게 된다. 이에 대규모 전차 및 최신 전투기 스마트 폭탄 등이 해상으로 이스라엘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미국의 지원 결정에 소련이 암암리에 아랍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도 이유가 되었다. 

이후에 이스라엘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특히 해전에서 이스라엘군이 대승을 거두면서 전세는 다시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세를 뒤집고 아랍연합군을 완전히 박살내려고 할 때 다시 미국과 소련의 강력한 개입으로 중재가 이루어지고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 전쟁에서 이집트는 막판에 거의 이스라엘군에 박살날 뻔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정전 후 시나이반도를 되찾았으며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시리아는 이스라엘 육군에 대패하면서 잃었던 골란고원을 되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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