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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읽기/채만식-태평천하

채만식 '태평천하' 26- 윤두꺼비는 이윽고......

by 구름은 자유롭다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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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두꺼비는 이윽고 세상이 평안한 뒤엔 집안의 문벌 없음을 섭섭히 여겨 가문을 빛나게 할 필생의 사업으로 네 가지 방책을 추렸습니다.

 

  맨 처음은 족보에다가 도금(鍍金)을 했습니다. 그럼직한 일가들을 추겨 가지고 보소(譜所)를 내놓고는, 윤두섭의 제 몇 대 윤아무개는 무슨 정승이요, 제 몇 대 윤아무개는 무슨 판서요, 제 몇 대 아무는 효자요, 제 몇 대 아무 부인은 열녀요, 이렇게 그럴싸하니 족보(族譜)를 새로 꾸몄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지요. 그러노라고 한 이천 원 돈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수나로운 만큼, 그러한 족보 도금이야 조상 치레나 되었지, 그리 신통할 건 없었습니다. 아무 데 내놓아도 말대가리 윤용규 자식 윤두꺼비요, 노름꾼 윤용규의 자식 윤두섭인걸요. 자연, 허천 들린 뱃속처럼 항상 뒤가 헛헛하던 것입니다. 신씨(申氏) 성 가진 친구를 잔나비라고 육장 놀려 주면, 그래 그러던 끝에 그 신씨가 동물원엘 가서 잔나비를 보면 어찌 생각이 이상하고, 내가 정말 잔나비거니 여겨지는 수가 있답니다.

  그 푼수로, 누구 사음이나 한 자리 얻어 할 양으로 보비위나 해주려는 사람이, 윤두꺼비네의 그 신편(新篇) 족보를 외어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몇 번씩 윤정승 아무개 씨의 제 몇 대손 윤두섭 씨, 윤판서 아무개 씨의 제 몇 대손 윤두섭 씨, 이렇게 대고 불러 주었으면, 가족보(假族譜)나마 적이 실감이 나서, 듣는 당자도 좋아하고 하겠지만, 어디 그런 영리하고도 실없는 사람이야 있나요. 혹은 작곡(作曲)을 해가지고 그것을 시체 유행가수를 시켜 소리판에다가 넣어서 육장 틀어 놓고 듣는다면 모르지요마는.

 

  족보는 아무튼 그래서 득실이 상반이었고, 그 다음은 윤두꺼비 자신이 처억 벼슬을 한 자리 했습니다. 시골은 향교(鄕校)라는 게 있어서, 공자님 맹자님을 비롯하여 옛날 여러 성현을 모시는 공청이 있습니다. 춘추로 소를 잡고 돼지를 잡고 해서 제사를 지내고 하지요. 돌이켜서는 그게 바로 학교더랍니다.

  이 향교의 맨 우두머리 가는 어른을 직원(直員)이라고 합니다. 직원을, 옛날에는 그 골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선비가 여러 사람의 촉망으로 뽑혀서 지내곤 했는데, 근년 향교의 재정이며 모든 범백을 군청에서 맡아 보게 된 뒤로부터는 전과는 기맥이 좀 달라졌는지, 장의(掌議)라고, 바로 직원의 아랫길 가는 역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사음이며 농토 같은 것을 줄 수 있는 다액납세자라면 직원 하나쯤 수월한 모양입니다. 윤두꺼비로서야 과거를 보아 벼슬을 해서 양반이 되겠습니까, 능참봉을 하겠습니까. 아쉰 대로 향교의 직원이 만만했겠지요. 그래 그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윤두섭이란 석 자 위에 무어나 직함이 붙기를 자타가 갈망하던 끝이라 윤두꺼비는 넙죽 뛰어 윤직원 영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삼 년 동안, 윤두꺼비(가 아니라) 윤직원 영감은 직원으로 지내면서 춘추 두 차례씩 향교에 올라가, 

 

    "흥―"

    "바이―"

 

  소리에 맞추어 누가 기운이 더 세었던지 모르는 공자님과 맹자님을 비롯하여 여러 성현께 절을 하는 양반이요, 선비 노릇을 착실히 했습니다.

  공자님과 맹자님이 누가 기운이 더 세었던지 모르겠다는 말은, 윤직원 영감이 창조해 낸 억만고의 수수께끼랍니다. 다른 게 아니라, 어느 해 여름인데 윤직원 영감이 향교엘 처억 올라오더니 마침 풍월(風月)을 하느라고 흥얼흥얼하고 앉았는 여러 장의와 선비들더러 밑도끝도없이,

    "대체 거, 공자님허구 맹자님허구 팔씨름을 히였으면 누가 이겼으꼬?"

하고 물었더랍니다. 장의와 선비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 못 해서 입만 떠억 벌렸고, 아무도 윤직원 영감의 궁금증은 풀어 주지는 못했답니다.

  삼 년 동안 직원을 지내다가, 서울로 이사를 해오는 계제에 그 직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직원이라는 영광스런 직함은, 공자님과 맹자님이 팔씨름을 했으면 누가 이겼을까? 하는 수수께끼로 더불어 영원히 쳐졌던 것입니다.

 

  그 다음, 윤직원 영감이 집안 문벌을 닦는 데 또 한 가지의 방책은 무어냐 하면, 양반 혼인이라는 좀더 빛나는 사업이었습니다. 외아들(서자 하나가 있기는 하니까 외아들이랄 수는 없지만 아무튼) 창식은 나이 근 오십 세요, 벌써 옛날에 시골서 아전집과 혼인을 했던 터이라 치지도외하고, 딸은 서울 어느 양반집으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오막살이에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인데, 그나마 방정맞게시리 혼인한 지 일년 만에 사위가 전차에 치여 죽고, 딸은 새파란 과부가 되어 지금은 친정살이를 하지만, 아무려나 양반혼인은 양반혼인이었습니다. 또 맏손자며느리는 충청도의 박씨네 문중에서 얻어 왔습니다. 역시 친정이 가난은 해도 패를 찬 양반의 씹니다. 둘째손자며느리는 서울 태생인데, 시구문 밖 조씨네 집안이나, 그렇다고 배추장수네 딸은 아니고, 파계를 따지면 조대비(趙大妃)와 서른일곱촌인지 아홉촌인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버젓하게 양반 사돈을 세 집이나 두게 된 것은 윤직원 영감으로 가히 한바탕 큰기침을 할 만도 합니다.

 

  그 다음 마지막 또 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게 가장 요긴하고 값나가는 품목입니다. 집안에서 정말 권세 있고 실속 있는 양반을 내놓자는 것입니다. 군수 하나와 경찰서장 하나……. 게다가 마침맞게 손자가 둘이지요. 하기야 군수보다는 도장관(도지사)이 좋겠고, 경찰서장보다는 경찰부장이 좋기는 하겠지만, 그건 너무 첫술에 배불러지라는 욕심이라 해서, 알맞게 우선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하던 것입니다.


* 보소(譜所) : 족보를 만들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한 사무소

* 수나로운(수나롭다) : 무엇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이 순조롭다

* 사음(舍音) : 마름,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

* 보비위(補脾胃) :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줌.

* 육장(六場) : 한번도 빼지 않고 늘

* 상반(相反) : 서로 반대되거나 어긋남

* 범백(凡百) : 갖가지의 모든 것

* 기맥(氣脈) : 기혈이 통하는 맥락 . 서로 통할 수 있는 낌새나 분위기 

* 장의(掌議) : 조선시대 성균관, 향교에 머물러 공부하던 유생의 임원 가운데 으뜸 자리.

* 계제(階梯) :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형편이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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