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일제강점기35 채만식 '태평천하' 15 - 얼굴이 말(馬面)처럼 길대서......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1 얼굴이 말(馬面)처럼 길대서 말대가리라는 별명을 듣던 윤직원 영감의 선친 윤용규는 본이 시골 토반(土班)이더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전(衙前)이더냐 하면 실상은 아전질도 제법 해먹지 못했습니다. 아전질을 못 해먹은 것이 시방 와서는 되레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그때 당년에야 흔한 도서원(道書院)이나마 한 자리 얻어 하고 싶은 생각이 꿀안 같았어도, 도시에 그만한 밑천이며 문필이며가 없었더랍니다. 말대가리 윤용규 그는, 삼십이 넘도록 탈망 바람으로 삿갓 하나를 의관삼아 촌 노름방으로 으실으실 돌아다니면서 개평꾼이나 뜯으면 그걸로 되돌아 앉아 투전장이나 뽑기, 방퉁이질이나 하기, 또 그도 저도 못하면 가난한 아내가 주린 배를 틀어쥐고서 바느질품을 팔아 어린.. 2024. 6. 2. 채만식 '태평천하' 14 - 그런지라 윤직원 영감은...... 3. 서양국 명창대회 - 5 그런지라 윤직원 영감은 여느 때 같으면 삼남이가 나와서 그렇게 허리를 굽신하면, 그저 오-냐 하고 좋게 대답을 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래저래 역정이 난 판이라 누구든지 맨 처음에 눈에 띄는 대로 소리를 우선 버럭 질러 주어야 할 판입니다. "야 이놈아! 어떤 손모가지가 문은 그렇기 훠어언허게 열어 누왔냐? 응?""저는 안 그龶어라우! 아마 중마내님이 금방 들어오꽆넌디, 그렇게 열어 누왔넝개비라우?" 중마나님이라는 건 윤직원 영감의 며느리로 지금 이 집의 형식상 주부(主婦)입니다. " 그龶으리라! 짝 찢을 년!"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더러 이렇게 욕을 하던 것입니다. 그는 며느리뿐만 아니라, 딸이고 손자며느리고, 또 지금은 죽고 없지만 자기 부인이고, 전에 데리고.. 2024. 5. 19. 채만식 '태평천하' 12 - 실상 윤직원 영감은...... 3. 서양국 명창대회 - 3 실상 윤직원 영감은 위정 그런 어거지를 쓴 것은 아닙니다. 꼭 극장만 여겨서 아래층이 하등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처음 몇 번의 경험에 의하면 명창대회는 아래층(그러니까 하등이지요) 맨 앞자리의 맨 앞줄이 제일 좋은 자리였습니다. 기생과 광대들의 일동일정이 바로 앞에서 잘 보이고 노래가 가까이 들리고 그리고 하등이라 값이 헐하고. 이러한 묘리를 터득한 윤직원 영감이라 오늘도 하등표를 산다고 사가지고 하등을 간다고 간 것이 상곱이나 더 하는 백권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뱃심이라고 할지 생억지라고 할지 아무튼 서두리꾼을 이겨내고 그대로 백권석에서 구경을 했습니다. 더욱 좋은 것은 여느 극장 같으면 하등인 맨 앞자리는 고놈 깍정이 같은 조무래기패가 옴.. 2024. 5. 5. 채만식 '태평천하' 11 - 윤직원 영감은 단박 분하고...... 3. 서양국 명창대회 -2 윤직원 영감은 단박 분하고 괘씸하고 창피하고 뭐, 도무지 어떻다고 형언할 수가 없읍니다. 아무리 예법이 없어진 오늘이라 하더라도, 만일 그 자리가 그 자리가 아니고 계동 자기네 댁만 같았어도 이놈 당장 잡아 내리라고 호령을 한바탕 했을 겝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고 칼날 밑에서와 총부리 앞에서 목숨을 내걸어 보기 수없던 윤직원 영감입니다. 또 시속이 어떻다는 것이며, 그래 아무 데서고 함부로 잘못 호령깨나 하는 체하다가는 괜히 되잡혀서 망신을 하는 수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속을 폭신 삭여 가지고 자기 손에 쥔 표를 내보이면서 나도 이렇게 구경을 왔노라고 점잖이 깨우쳐 주었읍니다. 그랬더니 양복신사씨는 윤직원 영감이 생각한 바와는 딴판으로 .. 2024. 4. 28. 채만식 '태평천하' 10 - 중로에서 그렇듯 많이...... 3. 서양국 명창대회 -1 중로에서 그렇듯 많이 충그리고 길이 터지고 했어도 회장에 당도했을 때에는 부민관 꼭대기의 큰 시계가 열두시밖에는 더 되지 않았읍니다. 입장권을 사기 전에 윤직원 영감과 춘심이 사이에는 또 한바탕 상지가 생겼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더러, 네 형이 출연을 한다면서 무대 뒷문으로 제 형을 찾아 들어가 공짜로 구경을 하라고 시키던 것입니다. 그러나 춘심이는, 암만 그렇더라도 저도 윤직원 영감을 따라왔고, 그래서 버젓한 손님이니까 버젓하게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야 말이지, 누가 치사하게 공구경을 하느냐고 우깁니다. 그래 한참이나 서로 고집을 세우고 양보를 않던 끝에, 윤직원 영감은 슬며시 십 전박이 두 푼을 꺼내서 춘심이 손에 쥐어 주면서 살살 달랩니다. " 옜다. 이.. 2024. 4. 21. 채만식 '태평천하' 9 - 윤직원 영감은 재동 네거리 ...... 2. 무임승차기술 - 5 윤직원 영감은 재동 네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춘심이와 같이 버스를 기다립니다. 때가 아침저녁의 러시아워도 아닌데 웬일인지 만원 된 차가 두 대나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더니 세 대째 만에, 그것도 여간 분비지 않는 걸, 들이 떼밀고 올라타니까 버스걸이 마구 울상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자기 혼자서 탔으면 꼬옥 알맞을 버스 한 채를 만원 이상의 승객과 같이 탔으니 남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윤직원 영감 당자도 무척 고생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갓을 버스 천장에다가 치받치지 않으려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섰자니,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해야 됩니다. 그 대신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의 겨드랑 밑에 가 박혀 있어 만약 두루마기 자락으로 가리기만 하면 찻삯은 안 물어도 될 성싶습니다. 겨.. 2024. 4. 8. 채만식 '태평천하' 7 - 기생이며 광대가...... 2. 무임승차기술 - 3 기생이며 광대가 가지각색이요, 그래서 노래도 여러 가지려니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오래오래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 감질나는 라디오보다는 그것이 늘 있는 게 아니어서 흠은 흠이지만, 그때그때만은 퍽 생광스럽습니다. 딱히 윤직원 영감의 소원 같아서는, 그런즉슨 명창대회를 일년 두고 삼백예순날 날마다 했으면 좋을 판입니다. 이렇듯 천하에 달가운 명창대횐지라, 서울 장안에서 언제고 명창대회를 하게 되면 윤직원 영감은 세상없어도 참례를 합니다. 만일 어느 명창대회에 윤직원 영감이 참례를 못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대복이의 태만입니다. 대복이는 멀리 타관에를 심부름 가고 있지 않는 이상 매일같이 골목 밖 이발소에 나가서 라디오의 프로그램과 명창대회나 조선음악연구회 주최의 공연이 있는지.. 2024. 3. 24.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