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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54

채만식 '태평천하' 27 - 윤직원 영감은 그처럼...... 5. 마음의 빈민굴  윤직원 영감은 그처럼 부민관의 명창대회로부터 돌아와서, 대문 안에 들어서던 길로 이 분풀이, 저 화풀이를 한데 얹어 그 알뜰한 삼남이 녀석을 데리고 며느리 고씨더러, 짝 찢을 년이니 오두가 나서 그러느니 한바탕 귀먹은 욕을 걸찍하게 해주고 나서야 적이 직성이 풀려, 마침 또 시장도 한 판이라 의관을 벗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랫목으로 펴놓은 돗자리 위에 방 안이 온통 그들먹하게시리 발을 개키고 앉아 있는 윤직원 영감 앞에다가, 올망졸망 사기 반상기가 그득 박힌 저녁상을 조심스레 가져다 놓는 게 둘째손자며느리 조씹니다. 방금, 경찰서장감으로 동경 가서 어느 사립대학의 법과에 다니는 종학(鍾學)의 아낙입니다.  서울 태생이요 조대비의 서른일곱촌인지 아홉촌인지 되는 양반집 규수요,.. 2024. 9. 25.
책읽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9 - 다독(多讀)과 정독(精讀) ◎ 다독(多讀)과 정독(精讀)우리는 흔히 묻곤 합니다. 아니 듣곤 합니다. 책을 다양하게 많이 읽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한 권의 책이라도 바르게 꼼꼼하게 내용을 천천히 새기면서 읽는 것이 좋아요?다독과 정독 책을 읽어 보려 할 때 혹은 선택하려 할 때 항상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다독과 정독은 모두 중요합니다. 어느 쪽이 더 좋다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묻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선택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좀 적어 보겠습니다. ● 나이일단은 나이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20대를 기점으로 노화가 시작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20대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보면 되겠습.. 2024. 9. 15.
채만식 '태평천하' 26- 윤두꺼비는 이윽고...... 윤두꺼비는 이윽고 세상이 평안한 뒤엔 집안의 문벌 없음을 섭섭히 여겨 가문을 빛나게 할 필생의 사업으로 네 가지 방책을 추렸습니다.   맨 처음은 족보에다가 도금(鍍金)을 했습니다. 그럼직한 일가들을 추겨 가지고 보소(譜所)를 내놓고는, 윤두섭의 제 몇 대 윤아무개는 무슨 정승이요, 제 몇 대 윤아무개는 무슨 판서요, 제 몇 대 아무는 효자요, 제 몇 대 아무 부인은 열녀요, 이렇게 그럴싸하니 족보(族譜)를 새로 꾸몄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지요. 그러노라고 한 이천 원 돈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수나로운 만큼, 그러한 족보 도금이야 조상 치레나 되었지, 그리 신통할 건 없었습니다. 아무 데 내놓아도 말대가리 윤용규 자식 윤두꺼비요, 노름꾼 윤용규의 자식 윤두섭인걸요. 자연, 허천 들린 뱃속처럼 .. 2024. 9. 5.
채만식 '태평천하' 25 - 이윽고 노적과 곡간에서...... 이윽고 노적과 곡간에서 하늘을 찌를 듯 불길이 솟아오르고, 동네 사람들이 그제야 여남은 모여들어 부질없이 물을 끼얹고 하는 판에, 발가벗은 윤두꺼비가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화적은 물론 벌써 물러갔고요.  윤두꺼비는 피에 물들어 참혹히 죽어 넘어진 부친의 시체를 안고 땅을 치면서,     "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 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또한 웅장한 절규이었습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윤직원 영감이 젊은 윤두꺼비 적에 겪던 경난의 한 토막이 대개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고난과 풍파 속에서 모아 마침내는 피까지 적신 재물이니, 그런 .. 2024. 8. 28.
채만식 '태평천하' 24 - 윤용규는 아주 각오를 했읍니다. 윤용규는 아주 각오를 했습니다. 행악은 어차피 당해 둔 것, 또 재물도 약간 뺏겨든 둔 것, 그렇다고 저희가 내 땅에다가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전답을 떠가지는 못할 것, 그러니 저희의 청을 들어 삼천 냥을 들여서 박가를 빼놓아 주느니보다는 월등 낫겠다고, 이렇게 이해까지 따진 끝의 각오이던 것입니다.   "진정"   두목은 한번 더 힘을 주어 다집니다.   "오-냐, 날 죽이기밖으 더 헐 테야?"  "저놈 잡아 내랏!"   윤용규의  말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두목이 뒤를 돌려다 보면서 호령을 합니다. 등뒤에 모여 섰던 수하 중에 서넛이 나가 우르르 방으로 몰려 들어 가더니 왁진왁진 윤용규를 잡아 끕니다. 그러자 마침 안채로난 뒷문이 와락 열리더니, 흰 머리채를 풀어 헤뜨린 윤용규의 노처가 아이구머니 .. 2024. 8. 20.
책 읽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8 - 나도 이제 남들 앞에서 아는체를......^^ ○ 맘에 드는 책 한 권을 100번 읽기  책 100권 읽기,한 분야 100권 읽고 전문가 흉내내기^^!,    모두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번 주제가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을 한 100권 정도 읽으신 상태라면 이제 독서 근력은 상당히 강화되었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제 책을 보지 않으면 몸이 조금 근질근질하고, 서점을 혹은 도서관을 지나갈 때면 왠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왠지 들어가서 새로운 책이 뭐가 있나 둘러보고 싶고, 친구들과 약속을 하면 만나는 장소를 서점으로 혹은 서점 안 카페로 하는 단계에 와 있을 것입니다. 맞나요?^^     한 권의 책을 100번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는 단계를 넘어 몰입하는 단계입니다. 어느 분야, 혹은 어떤 .. 2024. 8. 12.
채만식 '태평천하' 23 - 일은 그런데 피자파장이어서...... 일은 그런데 피장파장이어서 화적패도 또한 말대가리 윤용규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동료 박가를 찔러서 잡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박가가 잡혀가서 그 모진 혹형을 당하면서도 구혈이나 두목이나 도당의 성명을 불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런 만큼 의리가 가슴에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윤용규한테 대한 원한은 우선 접어 놓고 어디 일을 좀 무사히 펴이게 하도록 해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첫 꾀였습니다. 만약 그런 꾀가 아니라면야 들어서던 길로 지딱지딱 해버리고 돌아섰을 것이지요.  두목은 윤용규가 전번과는 달라 악이 바싹 올라 가기고 처음부터 발딱거리면서 뻣뻣이 말을 못 듣겠노라고 버티는 데는 물큰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이냐"   그는 눈을 부라..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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