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인문학54 채만식 '태평천하' 4 - 인력거꾼은 괜히...... 1. 윤직원 영감 귀택지도(歸宅之圖) - 4 인력거꾼은 괜히 돈 몇십 전 더 얻어먹으려다가 짜장 얻어먹지도 못하고 다른 데 벌이까지 놓치지 싶어, 할 수 없이 오십 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여전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시방, 나허구 실갱이를 허자구 이러넝가? 권연시리 자꾸 쓸디띴넌 소리를 허구 있어……! 아, 이 사람아, 돈 오십 전이 뉘 애기 이름인 종 아넝가?" "많이 여쭙잖습니다. 부민관서 예꺼정 모시구 왔는뎁쇼!" "그러닝개 말이네. 고까짓것 엎어지먼 코 달 년의 디를 태다 주구서 오십 전씩이나 달라구 허닝개 말이여!" "과하게 여쭙잖었습니다. 그리구 점잖은 어른께서 막걸릿값이나 나우 주서야 허잖겠사와요?" 윤직원 영감은 못 들은 체하고 모로 비.. 2024. 2. 23. 채만식 '태평천하' 3 - 알고 보니 참 기가...... 1. 윤직원 영감 귀택지도(歸宅之圖)-3 알고 보니 참 기가 막힙니다. 농도 할 사람이 따로 있지요. 웬만하면, 허허! 하고 한바탕 웃어 젖힐 노릇이겠지만 점잖은 어른 앞에서 그럴 수는 없고, 그래 히죽이 웃기만 합니다. "……그리서 나넌 그렇기 처분대루, 응……? 맘대루 말이네. 맘대루 허라구 허길래, 아 인력거 삯 안 주어도 갱기찮헌 종 알구서, 그냥 가라구 히였지!" 인력거꾼은 이 어른이 끝끝내 농을 하느라고 이러는가 했지만, 윤직원 영감의 안색이며 말씨며 조금도 그런 내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 참……! 나는 벨 신통헌 인력거꾼도 다아 있다구, 퍽 얌전허게 부았지! 늙은 사람이 욕본다구, 공으루 인력거 태다 주구 허넝 게 쟁히 기특허다구. 이 사람아, 사내대장부가 그렇기.. 2024. 2. 15. 채만식 '태평천하' 2 - 인력거에서 내려 선 윤직원 영감은...... 1. 윤직원 영감 귀택지도(歸宅之圖)-2 인력거에서 내려 선 윤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 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파란 염낭끈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삯이) 몇 푼이당가?"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 게 좀 경망스럽습니다. "그저 처분해 줍사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낀 허리를 굽신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히 생각해 달란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2024. 2. 3. 채만식 '태평천하' 1 - 추석이 지나 이윽고...... 1. 윤직원 영감 귀택지도(歸宅之圖)-1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 가는 가을 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 날 석양. 저 계동(桂洞)의 이름 난 장자〔富者〕윤직원(尹直員) 영감이 마침 어디 출입을 했다가 방금 인력거를 처억 잡숫고 돌아와, 마악 댁의 대문 앞에서 내리는 참입니다. 간밤에 꿈을 잘못 꾸었던지, 오늘 아침에 마누라하고 다툼질을 하고 나왔던지, 아무튼 엔간히 일수 좋지 못한 인력거꾼입니다. 여느 평탄한 길로 끌고 오기도 무던히 힘이 들었는데 골목쟁이로 들어서서는 빗밋이 경사가 진 이십여 칸을 끌어올리기야, 엄살이 아니라 정말 혀가 나올 뻔했습니다. 이십팔 관, 하고도 육백 몸메……! 윤직원 영감의 이 체중은, 그저께 춘심이년을 데리고 진고개로 산보를 갔다가 경성우편국 바로 뒷문 맞은편, 아.. 2024. 1. 28.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7 -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버렸다. 허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 2024. 1. 15.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6 - 산길을 벗어나니......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설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자나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 2024. 1. 11.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5 - 이지러는 졌으나... ...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 2024. 1. 7. 이전 1 ··· 3 4 5 6 7 8 다음 반응형